KOBICian’s Story
- 작성자 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5-02-28 2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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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더디게 봄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휴대폰으로 바깥 온도를 확인해 보니 무려 영상 16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올해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는데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서 벌써 3월, 새봄이 찾아왔습니다.
꼭 1년 전 제가 썼던 KOBICian’s Story 1호의 글 제목은 ‘유전체 박물관 - 자료(資料)와 사료(史料) 사이에서’였습니다. 3월 3일을 공개일로 설정한 데이터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총 23개의 바이오프로젝트를 등록하였습니다. 미생물에서 유래한 데이터가 전부라서 데이터 자체의 용량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여 이 오래된 데이터를 교육이나 참고 목적으로 이용할 분들을 위해서 데이터 파일과 함께 설명 자료를 작성하는데 정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때로는 먼지 냄새가 나는 연구 노트를 뒤적이며 샘플 준비와 정보 분석 과정을 다시 기억해 내면서 연구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K-BDS 설계·개발 및 유지보수, 그리고 제출된 데이터의 검수를 책임지는 담당자들과 계속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등록자 입장에서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간혹 벌어지는 접속 장애 현상을 보고하기도 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웹사이트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데이터 등록 표준 양식을 계속하여 손질하고, 연구계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데이터 표준안을 만들어내는 담당자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전체 박물관(혹은 유전체 고물상?) 작업 난이도의 ‘끝판왕’은 바로 3월 3일에 공개될 미생물 유전체 시퀀싱 자료의 묶음이었습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제가 2013년도에 KOBIC에 근무하던 시절에 추진했던 것입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KCTC)에서 보유한 당시 유전체 미해독 표준균주 및 생명연 소속 개인 연구자가 갖고 있던 미생물 균주 72건을 모아서 연구소 내 HiSeq 2000으로 유전체를 해독했습니다. 기초적인 QC와 조립을 마친 결과 파일은 균주를 제공한 연구자에게 돌려드린 후 각자 유용 유전자 탐색이나 논문 출판 등의 용도로 활용하시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샘플 수집에 대한 공통적인 목적 같은 것이 원래 없었기 때문에, 전체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평가하려는 시도는 10년이 넘도록 하지 못하였고 다만 각 균주에 대해 개별적인 논문이 몇 편 나가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원 데이터와 조립 결과물을 K-BDS에 등록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작년 말부터 제가 직접 나서서 등록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실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외국에서 동일한 표준균주의 유전체 정보를 생산하여 이미 NCBI 등에 등록해 버렸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제가 한꺼번에 다루었던 미생물 유전체 데이터 중 그 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병원체인 Acinetobacter baumannii(N=99, PRJNA448358)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수치상으로는 이보다 적은 72개 샘플이지만, 전자의 경우는 한 곳의 병원에서 분리한 동일 종 세균이었고 분석 및 논문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반면 이번에는 자료를 뒤져서 제각기 다른 균주의 분리 시기와 장소 등의 정보를 최대한 찾아내고, 유전체 조립까지 이어지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데이터를 걸러냄과 동시에, 과연 정확한 샘플을 가지고 실험을 한 것이 맞는지 최종 결과물의 분석을 통해 확인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데이터 업로드를 해 놓은 상태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느라 관리자에게 몇 번이나 반려를 요청했는지 모릅니다. 2024년 말에 오픈된 K-BDS 고도화 버전에서 제공하는 엑셀 형태의 웹 입력 양식이 처음에는 생소하게 느껴졌으나, 이제는 너무나 편리하여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칭찬을 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만약 K-BDS가 더욱 고도화를 거쳐서 수시로 변하는 미생물의 분류 체계를 반영하여 샘플의 ‘correct name’이 늘 유지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QC를 통과하지 못한 샘플 8건은 원본 FASTQ 파일과 중간 분석 결과물을 묶어서 ‘미생물 유전체의 저품질 일루미나 시퀀싱 사례’라는 제목의 기타 데이터 타입으로 등록하였습니다. 망친 데이터를 등록하다니? 맞습니다. 기이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 현장에서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저품질 시퀀싱 결과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을 파악한다면, 실험 과정이나 자원 관리 등에서 개선을 해야 할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균주를 제공해 주신 연구자께도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균주 분리 당시의 정보는 많은 시간이 경과한 지금 찾기 쉬운 형태로 남아 있지는 않기 때문에, 저의 갑작스런 부탁을 받고 예전 기록을 뒤져서 바이오샘플 메타데이터 파일에 채울 정보를 찾아 주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균주 분양에 관한 정책을 확인해 주시고 검토를 거쳐 분양 가능 상태로 전환해 주신 생물자원센터 관계자께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최종적으로 56건의 데이터가 KRA에 등록되었고, 유전체 조립물의 KNA 등록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포함되어 있던 Paenibacillus azoreducens 표준균주는 아직 그 누구도 해독을 한 일이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이 조립물은 NCBI에 중복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다른 참조 유전체와 같이 취급되어 전세계 연구자들에게 퍼져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KNA에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가 모이고, 이것이 ‘데이터 브로커링’을 통해서 INSDC를 거쳐 활발히 퍼져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K-BDS가 지명도를 얻고 국제화에 다가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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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에서 인체유래데이터은행 업무를 수행하며 동의서를 검토할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제출한 동의서를 살펴보면 대부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지 제34호 서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의가 실제로 보장하는 것은 주로 인체유래물, 즉 물리적 생체 시료의 취급입니다. 정작 그 시료에서 생성되고 분석된 데이터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현행 제도하에서 연구자는 연구 수행을 위해 연구대상자로부터 [별지 제34호 서식], 이른바 '인체유래물 연구 동의서'를 기준으로 동의를 받습니다. 이 서식은 물리적 자원인 인체유래물의 유한성과 품질 저하를 전제로, 보존기간과 사용 범위, 반출 조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준이 데이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면서 실무에서 반복적인 충돌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데이터는 한 번 생성되면 내용이 닳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며 분석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됩니다. 그럼에도 데이터를 소모되는 자원처럼 다루면, 동의서의 시곗바늘이 멈추는 순간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도 함께 멈추게 됩니다.
현장에서는 동의서에서 정한 보존기간이 끝난 데이터가 연구적으로 여전히 유효한 자산으로 남아 있지만, 제도적 불확실성 때문에 활용을 중단하고 폐기해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비단 연구 일정의 지연 문제뿐만 아니라, 공공이 투자해 만든 데이터 자산의 경제적·사회적 효율이 떨어지는 일입니다. 특히 희귀질환이나 소수 집단 연구의 경우, 데이터 재수집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많아 이러한 손실은 더욱 큽니다.
동의의 핵심은 보존기간이 아니라 거버넌스입니다. 해외는 데이터의 지속성을 인정하고, 대신 접근 통제와 추적, 감사(audit) 등 절차적 장치를 통해 기증자의 권리와 사회적 공익을 동시에 지킵니다. 미국 NIH에서 사용하는 동의서는 연구자가 연구계획서에 명시한 기간으로 보존기간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며, 무기한 지정도 가능합니다. 영국 UK Biobank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수집된 데이터와 샘플뿐만 아니라 기증자의 의료기록 등 건강 관련 기록에도 접근이 가능하며, 무기한 장기 보존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는 기증자가 행위무능력 상태가 되거나 사망한 후도 포함됩니다.
반면 대한민국의 [별지 제34호 서식] 동의서는 연구 목적과 인체유래물 종류 및 수량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되어 있으며, 기증자가 보존기간을 지정합니다. 제3자 제공은 기증자가 선택한 "포괄적 연구 목적" 혹은 "유사한 연구 범위"에 한해서만 가능하고, 해외 연구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동의(개인정보 보호법 제28조의8)가 필요합니다. 데이터를 연구 목적으로 제3자에게 널리 분양하려면 [별지 제41호 서식]을 작성하여 인체유래물은행에 기증하는 절차까지 거쳐야 한다는 국내의 제도를 정확히 몰라서 데이터의 재활용이 잘 되지 않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러한 제한적 구조는 기증자 보호라는 명분은 강하지만, 실제 데이터 활용의 유연성은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만약 한 연구자가 10년 전 암 환자들로부터 동의(보존기간: 동의 후 5년)를 받아 특정 유전자 변이와 항암제 반응성 연구를 완료하고 그 과정에서 생성된 유전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최근 급속히 발전한 AI 기반 바이오마커 발굴 기술울 이용하여 이로부터 새로운 치료 타깃을 찾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데이터는 이미 존재하고 연구 목적도 동일하지만, 동의서에 명시된 보존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수백 명의 기증자를 다시 찾아가 재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최초 동의 시점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다수 환자의 연락처가 바뀌었거나 이미 사망하여 재동의를 받기 어려운 경우, 해당 데이터는 사장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답의 실마리는 데이터에 특화된 표준동의서입니다. 먼저 해외 사례처럼 broad consent(포괄적/광범위 동의)를 채택해 연구 과제 단위를 넘어 목적군 단위로 재사용을 허용해야 합니다. 보존기간을 설정하는 대신 보안과 거버넌스로 위험을 관리하고, 동의를 일회성이 아닌 갱신 가능한 약속으로 전환해 기증자가 자신의 선택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변경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동의 체계는 세 가지 원칙 위에 서야 합니다.
기증자 중심. 선택과 철회, 갱신의 권리를 쉬운 용어와 온라인 절차로 보장하여, 기증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권한은 필요한 만큼만, 과정은 투명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범위만 접근을 허용하되, 모든 과정은 기록하고 공개합니다. 데이터 접근 이력을 추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후 감독 체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와 공익의 균형.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연구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이익이 상충할 때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인체유래데이터의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면서도 기증자의 권리를 지키는 새로운 동의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 작성자정재은 (KOBIC 선임기술원)
- 작성일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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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계에 놀라운 생명 현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에 서식하는 특정 수확개미 종에서 한 여왕개미가 두 가지 서로 다른 종의 수컷을 생산하는 '제노페리티(Xenoparity)'라는 현상이 관찰된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진화와 번식 전략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학계에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개미의 수컷(n)은 수정되지 않은 알에서 단성생식으로 생겨나는 반면, 일개미(2n)는 수정된 알에서 발생한 생식 능력 없는 암컷이라는 기본 상식을 일단 기억해 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이베리아반도에서 발견되는 '이베리아 수확개미'(학명 Messor ibericus)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유럽 전역에서 개미를 채집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하던 중, 예기치 않게 충격적인 데이터를 발견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개미 집단 내에서는 유전적 이형 접합성(heterozygosity)이 낮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는 같은 종 내에서의 번식을 통해 유전자가 유사하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베리아 수확개미 중 일부 일개미 집단에서 유독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형 접합성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 결과는 이들 일개미가 순종이 아닌 '잡종 일개미'일 가능성을 말하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베리아 수확개미의 일개미는 100% 잡종으로만 발견되며, 순종 일개미는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여왕개미는 예외 없이 순종으로만 존재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이 잡종 일개미들이 누구로부터 태어났는지 추적하기 위해 DNA 분석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잡종 일개미의 엄마는 이베리아 수확개미이고, 아빠는 '스트럭터 수확개미'(학명 Messor structor)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두 가지 서로 다른 종의 개미가 교배하여 잡종 일개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DNA 서열 분석을 통해 확인된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미스터리가 발생했습니다. 잡종 일개미가 발견되는 지역의 분포를 살펴보니, 이베리아 수확개미와 스트럭터 수확개미가 모두 서식하는 지역뿐만 아니라, 아빠 종인 스트럭터 수확개미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시칠리아 같은 지역에서도 잡종 일개미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입니다. 마치 호랑이가 없는 동물원에서 라이거(숫사자와 암범의 종간 잡종)가 태어난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럭터 수확개미가 없는 지역에서 이 잡종 일개미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연구진은 이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26개의 이베리아 수확개미 군집 내에서 수컷 132마리를 채집하여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44%의 수컷은 털이 많은 형태였으며 나머지 56%는 거의 털이 없는 뚜렷한 형태적 이형성(morphological dimorphism)이 관찰되었고, 계통 분석(phylogenetic analyses)으로도 털이 많은 수컷은 '이베리아 수확개미'(M. ibericus) 그룹에, 털이 없는 수컷은 '스트럭터 수확개미'(M. structor) 그룹에 속하였습니다. 이로써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이 이베리아 수확개미 군집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이 어떻게 이베리아 수확개미 군집 내에서 발견되었는지 또다시 의문이 생겼습니다. 연구진은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의 분자 분석(molecular analyses)을 통해 비밀을 밝혀냅니다. 분석 결과,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은 군집 내의 이베리아 수확개미 개체들과 동일한 미토콘드리아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군집 전체가 공통의 이베리아 수확개미 어미로부터 기원했음을 의미하며,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이 두 종의 수컷을 모두 생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증거였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수컷 개미는 수정되지 않은 알을 통해 모계로부터만 유전자를 상속받는 반수체(haploid)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 개미는 모계의 DNA만을 가지고 있게 되지만,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이 낳은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의 핵에는 엄마인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의 DNA는 없고, 아빠인 스트럭터 수확개미의 DNA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생물군에서도 관찰된 바 있으며, 무핵 난자 수정 또는 모계 유전체 제거로 인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이러한 현상이 종 간의 장벽을 넘어 다른 종의 정자로부터 수컷을 생산하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발견입니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번식 시스템을 '제노페리티'(Xenoparity)라고 일컬었습니다. '제노(Xeno)'는 '다른, 이상한, 외부의'라는 뜻이고, '패리티(parity)'는 '생식한다, 번식한다'는 뜻으로, '다른 종의 새끼를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맨 처음에는 이베리아 수확개미 여왕도 실제 야생계통(wild-type lineage)의 스트럭터 수확개미 수컷과 교배를 통해 잡종 일개미를 생산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타종의 수컷이 꼭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며, 의존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 이후 '정자 기생' 단계를 넘어 그 종의 수컷을 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되었고 제노패리티 시스템이 진화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세포·유전학적 기전으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미스테리입니다.
이베리아 수확개미의 이러한 독특한 번식 시스템은 생명의 경이로움과 진화의 무한한 창조력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생명의 진화는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창의적인 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Juvé, Y., Lutrat, C., Ha, A. et al. One mother for two species via obligate cross-species cloning in ants. Nature 646, 372–377 (2025). https://doi.org/10.1038/s41586-025-09425-w
사이언스지의 뉴스(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ant-queen-lays-eggs-hatch-two-species)
Smithsonian Magazine 기사(https://www.smithsonianmag.com/smart-news/these-ant-queens-seem-to-defy-biology-they-lay-eggs-that-hatch-into-another-species-180987292/)
GeekNews(https://news.hada.io/topic?id=23186)
- 작성자최진혁 (KOBIC 선임연구기사)
- 작성일2025-10-20
- 조회수152
- 댓글수0
이 글이 공개될 월요일 무렵이면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행을 그렇게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은 추석 연휴 동안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일 년 만에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며칠간의 연차 휴가를 덧붙인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최근 환율도 너무 올랐고 외국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 때문에 입국 심사 과정에 혹시 차질은 없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출국 직전까지 서울과 고양, 그리고 제주도를 오가면서 바쁜 업무를 소화하느라 혹시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여정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이라서 안전하게 여행을 다 마쳤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모든 걱정의 95%는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거나, 또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일이라서 걱정을 해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란 어찌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알약 하나를 삶에 풀어 넣고 들이키면서 이를 즐기거나 심지어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기회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날씨가 완벽하고, 공항 수속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숙소는 청결하고, 모든 것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경험만 한다면 그만큼 재미없는 여행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도 이번 뉴욕 여행에서 구글맵에 의존하여 현대미술관(MoMA)을 찾아가다가 잠시 길을 잘못 접어들었을 때, ‘파파라치 도그맨과 래빗걸’(Paparazzi Dogman & Paparazzi Rabbitgirl)이라는 공공미술 조각 작품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영어 소통은 여행에서 접하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언어란 원칙적으로 통제 가능하지만 능통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지요. 브롱크스행 지하철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다른 노선으로 우회한다는 안내 방송을 가까스로 알아듣고, 작년에 뉴욕을 방문하여 지하철에서 겪었던 얄팍한 경험―엄청나게 고생했다는 뜻임―을 동원하여 분기점 역에서 가까스로 내렸습니다. 뒤 그곳으로부터 목적지를 가기 위해 원래 계획에는 없었지만 센트럴파크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며 정말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였습니다. 그 순간에는 순발력있게 잘 대응했다고 잠시 우쭐하였지만, 결국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는 의사소통 문제로 또다시 좌절감을 겪었답니다.
인생이라는 잘 설계된 짐꾸러미에 내가 원하지 않으니 ‘우연’을 넣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것이고, 일부러라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글의 주제입니다. 생물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우연은 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이는 혁신의 원동력이자 피할 수 있는 생명의 속성입니다. 변이체는 지금 당면한 현실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변이를 시도할 때 변화하는 환경에 언젠가 적응하여 세상의 주류가 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종종 이방인이나 소외자가 세상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너무 단조롭고 원하는 대로 술술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연이라는 난수 발생기를 일부러라도 한번 돌려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행은 아주 좋은 선택이 됩니다.
여행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예를 들어 뉴욕시에는 화재 탈출용 철제 사다리(fire escape)를 외부에 갖춘 고풍스러운 주거용 건물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 이는 당시 법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서 건물이 지어진 지 최소한 90년이 넘었음을 증명합니다. 원주민과 주류 이민자 및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뉴욕이라는 도시를 형성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권리와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려는 운동과 전시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본인의 경제적 형편에도 잘 맞아야 하고, 세계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저개발국가의 싼 물가를 이용하여 호사를 누리는 여행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여 돈을 쓰기 때문에 그들이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그 나라의 경제가 돌아가게 한다는 다분히 소비자적이면서 우월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여행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나 자연환경을 해치고, 그들을 저임금 관광 산업 종사자로 얽어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뉴욕시 지하철에 붙은 질서 유지 안내문에서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한 방문자(inattentive visitors)는 되지 말아 달라는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광객이니까 아무리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현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K-문화 신드롬 때문에 이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도 급증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배타적인 생각을 갖지 말고,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잘 대우받기를 기대하듯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대해야 합니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라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연은 모험과 성장의 씨앗이 됩니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우연은 늘 예기치 못한 바람처럼 불어옵니다. 그 바람이 때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항구를 떠나야 비로소 바다의 넓이를 알 수 있듯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야 세상의 다양함과 인간의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이 제게 가르쳐 준 것은, 안전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우연이 열어주는 성장의 가능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여 편의 유튜브 쇼츠가 추억으로 남았고, 이를 만드느라 동영상 편집 기술도 많이 늘었답니다.
- 작성자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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