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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ICian’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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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바이오 소재자원은행과 소재자원은행의 표준화제도
  • 작성자 하경수 (KOBIC 기술원)
  • 작성일2024-10-21 07:51:26
  • 조회수609
  • 댓글수0

은행의 사전적 의미는 ‘예금을 받아 그 돈을 자금으로 하여 대출, 어음 거래, 증권의 인수 따위를 업무로 하는 금융 기관으로 크게 중앙은행, 일반 은행, 특수 은행으로 구분한다’입니다. 하지만 금전을 다루는 은행 이외에도 우리 주위에는 다양한 은행이 존재합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바이오 소재자원은행(Bioresource Bank 또는 Biobank)”입니다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은행’과 같은 비슷한 업무를 하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다만 돈이 아닌 바이오소재(실물)와 이와 관련된 정보를 확보하고 보관하면서 소비자(산·학·연·관 등의 연구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분양하는 업무를 하는 곳이 소재자원은행입니다.

 

우리가 금융기관을 선택할 때는 그곳이 제1금융권 또는 제2금융권 중 어디에 속하는지, 규모와 안전성은 어떠한지를 미리 확인하게 됩니다. 거래하기 편리하고 나중에 안전하게 예금을 찾을 수 있는 금융기관을 고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바이오 소재자원은행도 이와 비슷하게 연구자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 제도라는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이오소재의 표준화라는 생소한 말이 다소 어색할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 누구나 알고 있는 커피숍인 ‘스타벅스’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분위기도 있겠지만 언제 어느 매장을 찾더라도 균일한 품질의 커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장을 찾을 때마다 커피의 맛과 향이 매번 다르고, 서로 다른 매장에서 제공하는 커피의 질 또한 편차가 심하다면 여러분들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를 다시 이용하게 될까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편차를 줄이기 위해 커피의 수집 보관 방법 그리고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 즉 레시피를 개발하고 이를 직원들에게 교육하여 항상 동일한 맛과 향의 커피를 제공하는 것을 ‘표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의 표준화란 은행이 제공하는 상품 즉 ‘바이오소재’를 수집부터 전처리, 제작, 보관 및 배송까지 일련의 과정을 각 은행별 소재에 적합한 방법에 따라 수행하고 이를 기록하여 검증과 확인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시스템)입니다. 이와 같은 바이오소재에 대한 전(全) 과정에 대한 표준화가 국내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에 적용된다면 이를 활용하는 산·학·연·병 연구자들은 국내 소재자원은행을 통해 분양받은 바이오소재를 믿고 사용할 수 있고, 추가적인 검증실험 등의 번거로움을 줄임과 동시에 신뢰도 향상을 통한 바이오소재의 활용 활성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현재 국내 연구자가 미생물이나 세포주 등 다양한 바이오소재를 검색하고 분양받을 때 국내보다 해외 소재자원은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 기관은 보유한 소재자원의 종류가 다양하고, 소재에 대한 정보 및 기존의 연구데이터(Reference)가 풍부하여 해당 기관의 자원을 신뢰하고 사용하고 있는 반면, 국내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은 상대적으로 자원 수가 적고 신뢰성도 낮다고 여겨서 사용을 꺼리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 소재자원은행이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표준화 인정제도에 따라 인증을 획득하여 신뢰할 수 있는 바이오 소재자원을 공급한다면, 굳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국외기관을 활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소재자원은행의 표준화 인정제도는 국내 소재자원은행의 활용 증대 및 경쟁력 확보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18년 소재자원은행에 대한 표준을 처음 제정했고, 우리나라는 2019년 12월 말 이를 KS J ISO 20387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입 당시에 우리나라에 해당 표준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지 않아 2022년 1월부터 바이오 소재자원 전문가를 대상으로 평가사 교육을 시작으로 전문인력양성 교육 외 시범인정을 추진하였고, KS J ISO 20387의 인체유래물, 동물, 식물, 미생물, 기타 5가지 카테고리 중 2022년 3개 기관의 인정 획득을 시작으로 2024년 10월까지 국내에서는 인체유래물 2개, 미생물 2개 기관 등 총 6*개 기관이 인정을 획득했습니다.

 

  *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 국가병원체자원은행, 국가방사선혈액자원은행, 생명(연)_생물자원센터, 생명(연)_실험동물자원센터, 세계김치연구소_김치자원은행

 

KOBIC 바이오소재 총괄지원단에서는 국제적으로 초기 단계인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의 표준화 제도를 우리나라의 바이오 소재자원은행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외 바이오 소재자원은행 표준화관련 정보들을 수집·제공하고 있으며, 국내 소재자원은행들의 KS J ISO 20387 인정획득에 필요한 문서(매뉴얼, 절차서, 지침서) 구축에 도움을 주는 가이드북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은행관계자, 연구자 및 일반인들에게 제도 홍보를 위한 리플렛을 제작·배포하는 등의 홍보활동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의 신뢰성이 증진되어, 국내 소재자원은행의 국내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의 자원을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내 바이오 소재자원은행의 노력과 발전에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KOBICian’s story는 KOBIC 멤버가 직접 작성하는 현장감 넘치는 글로서 KOBIC의 업무 방향이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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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반복에 지쳐 무료함이 찾아올 때면, 어린 시절 품었던 공상과학적 상상을 영화로 옮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 상상을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철학을 담아낸 공상과학 영화 시놉시스를 써보았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글을 통해 잠시나마 일상의 틀을 벗어나 작은 즐거움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제목: 미니 어스(Mini Earth)

 

<프롤로그공태양과 미니 어스의 탄생

2058년, 인류는 마침내 꿈꾸던 핵융합 발전소를 완성한다. 핵융합의 결정체인 인공태양이 토카막 장치(자기장으로 인공태양을 가두는 장치) 안에서 첫 빛을 발하는 순간, 무한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고 세상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그 빛의 이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인공태양을 감싸기 시작한다. 흩날리던 미세 먼지들은 서서히 모여 단단한 구슬로 변하고, 그 작은 씨앗은 점차 하나의 미니 행성으로 태동하며 인공태양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행성은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생성된 행성들 중 하나에서는 물이 흐르고, 대기가 형성되며, 원시 생명체가 태어난다. 인류는 경이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이 행성을 미니 어스라 부르며 연구에 착수한다.

그 최전선에는 두 인물이 있다. 미니 어스의 진화를 적극적으로 이끌려는 천재 물리학자 한동수 박사, 그리고 인간의 개입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철학적 생물학자 이유정 박사. 두 사상은 정면으로 충돌하며, 미니 어스는 단순한 과학 실험을 넘어 새로운 생명의 운명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의 무대로 변한다.

 

<전개> 1. 미니 어스 첫 번째 대격변 발생(천재지변)

생성된 행성들 중 하나가 예기치 못한 궤도로 진입하며 미니 어스를 향해 돌진한다. 붉은 빛이 미니 어스의 하늘을 물들이고, 충돌이 일어난다면 행성은 파괴될 것이 분명했다.

한동수 박사 연구팀은 미니 어스의 생명체들에게 감정이입하며 고민한다. ‘내가 이 생명체들을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들의 신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반면 이유정 박사팀은 자연 현상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결국 한동수 박사팀은 은밀히 토카막 장치를 조작해 행성의 궤도를 바꾸려 한다. 그러나 미니 어스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인다. 중력이 요동치며 시간의 흐름이 급격히 가속화된 것이다. 충돌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미니 어스의 생태계와 문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진화를 맞는다. 그 순간, 한동수 박사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 오만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전개> 2. 미니 어스의 문명 발전 우주로 나가는 존재들

시간의 가속 속에서, 미니 어스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성장한다. 그들은 원자력, 양자역학, 생명공학을 섭렵하며 마침내 인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에 도달한다. 이제 그들의 눈은 우주를 향한다. 비록 그것이 토카막 장치 안의 제한된 공간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무한한 우주였다.

이를 지켜본 연구팀은 경악한다. ‘우리가 창조한 존재들이 이제 우리의 영역에 다가오고 있다!’

한동수 박사팀은 이제 그들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우리와 동등한 지적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유정 박사는 ‘그들이 우리를 신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신이 되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고, 개입하는 순간, 그들 역시 결국 인간이 걸어온 길 '오만과 실수의 길' 을 반복하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한다.

 

<전개> 3. 미니 어스 생명체들의 인식

마침내 미니 어스의 문명은 연구팀의 존재를 감지한다. 한동수 박사팀은 불안에 휩싸인다. ‘그들이 우리를 신으로 인식할까, 아니면 침입자로 인식할까?’

미니 어스의 생명체들은 하늘을 향해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고, 인간을 ‘신’이라 숭배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그 신앙은 점점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하며, 인간을 시험하려는 듯한 의식으로 발전한다.

결단 끝에 한동수 박사가 첫 직접 접촉을 시도하려는 순간, 예상과 달리 그들로부터 먼저 신호가 도착한다. 연구팀은 신호를 해독하다가 경악한다. 그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너희는 너희 창조주를 이해하는가?”

그들은 더 이상 피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구팀이 실험당하는 입장이었고, 인간이 신이 아니라 피실험체였던 것이다. 연구팀은 새로운 공포에 사로잡힌다.

 

<엔딩> 선택의 기로

연구팀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니 어스를 파괴할 것인가? 그들과 직접 소통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

카메라는 미니 어스의 푸른 행성을 비추며 점점 멀어진다. 그 순간, 연구팀 위로 거대한 손가락 같은 것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또 다른 미니 어스가 아닐까?”

 

 

영화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 시놉시스는 단순한 상상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형 로봇과 AI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가능성을 선사하지만, 통제 불가능한 두려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불안을 불러옵니다. 이 시놉시스의 미니어스가 인간에게 던진 질문은 사실 미래의 우리가 AI와 로봇에게 던지게 될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창조일까요? 피조물일까요?’

잠시나마 이 글이 여러분의 일상 속에 작은 상상과 사유의 여지를 남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한국희 (KOBIC 선임연구기사)
  • 작성일2025-10-06
  • 조회수43
  •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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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학 동기 셋이 함께 첫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베트남 다낭. 이곳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동행한 친구 중 한 명이 1년 동안 베트남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언어와 문화를 조금 익혔고, 마침 다낭 왕복 항공권이 땡처리로 저렴하게 나온 것을 발견한 것이죠. 베트남어가 약간 통한다는 든든함도 저의 선택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첫 여행의 설렘은 곧 무모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숙소조차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패기를 보였고, 그 대가는 새벽에 다낭에 도착한 후부터 고스란히 치러야 했습니다. 저렴한 숙소는 모두 닫혀 있었고, 열려 있는 곳은 그저 몇 시간 잠만 자기엔 부담스러운 리조트뿐이었죠.

 

하염없이 걷다 겨우 찾아낸 유스호스텔 같은 숙소를 찾아 들어갔지만, 방을 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로비나 바깥 벤치에서만이라도 잠시 몸을 누일 수 없겠냐고 물었지만, 직원은 고개를 저었어요. 다른 곳으로 가보라는 말뿐이었죠. 하지만 새벽녘에 더 돌아다닐 기운조차 없었던 우리는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하면서 벤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곤 지친 몸을 누인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첫 해외여행의 시작이 노숙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벤치 위에서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때쯤, 낯선 음악 소리가 우리를 잠에서 깨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키는 선율이었어요. 당시에는 ‘아, 이 나라에도 비슷한 운동이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베트남의 새농촌마을 사업과 관련된 노래였습니다. 그 선율과 함께 점점 거리를 가득 메우는 오토바이의 경적과 차량 소음이 뒤섞여 이국적인 리듬을 만들어냈어요. 눈을 뜬 순간 마주한 풍경은 한국의 일상과는 전혀 달랐고, 그 순간 저는 ‘정말 다른 세계와 와 있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바닷가에 닿았어요. 이른 아침의 다낭 해변은 생각보다 조용했습니다. 관광객도, 현지인들의 분주한 모습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간.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잔잔한 파도 소리만이 우리 곁을 채웠습니다. 낯선 도시 새벽의 고요함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곳이 완전히 다른 세계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해변 위에 차려진 노점 식당에 들어가 배를 채웠어요. 특별한 것 없는 한 끼였지만, 낯선 땅에서 먹는 첫 식사라는 의미만으로도 기억에 깊이 새겨졌지요.

 

여행 내내 드러난 우리의 차이점 중 하나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저는 비위가 약해 길거리 음식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어요. 결국 깨끗해 보이는 식당이나 서양 음식점을 찾아야 마음 놓고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친구들은 거리의 국수며 꼬치를 거리낌 없이 즐겼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음식 하나로 각자가 가져가는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낭에서 후에로 이동해 오래된 사원을 찾아 오토바이를 빌려 탔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좁은 도로를 달리자, 눈앞에는 낯선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졌나요. 그 순간만큼을 해방감이 온몸을 채웠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스며들었습니다. 낯선 교통 체계 속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 자유와 위험이 공존하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그저 순간의 짜릿함에 몸을 맡겼었죠. 그리고 돌아보면 사실 대단한 바이크도 아니고, 그저 작은 스쿠터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묘한 웃음을 자아내곤 합니다.

 

관광지를 둘러보며 목이 말라 노점상에서 물을 사 마셨는데,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디지털카메라를 그곳에 두고 온 걸 깨달았어요. 서둘러 다시 돌아갔지만, 이미 카메라도, 자리를 지키던 노점상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험 보상을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지만, 언어의 벽은 높았어요. 그때 뜻밖에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등장했습니다. 한류가 막 싹트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베트남의 한 경찰서에서 한국어를 듣게 되니 놀랍고도 반가웠어요. 비록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 만남은 여행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시장에 들렀을 때도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다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과일 노점에서 거래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가만히 듣던 친구가 과일 노점상이 가격을 한 10배쯤 비싸게 부르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어로 흥정해 적정 가격에 거래할 수 있었지만, 언어가 안 통하는 관광객에게는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모습이 씁쓸했어요.

 

이런 경험은 시장에서만 겪은 것이 아니었죠. 여행 기간 몇몇 식당에서도 관광객 전용 메뉴판을 내밀며 비싼 금액을 적어놓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베트남어로 메뉴를 물어볼 때는 가격이 달라지는 걸 직접 보니,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대접을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이 관광객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운 사례가 뉴스에 오르곤 하는데, 막상 제가 그 상황이 되어보니 이해보다는 서운함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아름답게만 남을 수 있었던 기억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았어요. 시작은 벤치에서의 노숙이었고, 이어지는 여정마다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사건들이야말로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어요. 계획대로만 흘렀다면 얻지 못했을 배움이었죠. 불편함과 당혹스러움 속에서도 저는 세상은 넓고, 제 기준은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 뜻하지 않은 불편함이 오히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베트남에서 보낸 시간은 긴 여운으로 남았어요. 여행은 과정에서도 빛난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한 후에도 그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을 흔들었어요. 벤치에서 떨며 보낸 첫날 밤, 오토바이로 달리며 느꼈던 해방감, 경찰서에서 뜻밖의 인연, 시장과 식당에서 겪었던 씁쓸한 경험까지, 모든 조각이 모여 제 안에서 여행의 새로운 정의가 되었습니다.

 

여행은 단순히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낯선 세계와 마주하면 나를 시험하고 확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서, 저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인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편함마저 웃으면 추억할 수 있게 만든 것, 그것이야말로 첫 해외여행이 제게 준 진짜 선물이었답니다.

  • 작성자송왕호 (KOBIC Developer)
  • 작성일2025-09-29
  • 조회수224
  •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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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부터 이틀 동안 KOBIC 3층의 전산교육장에서는 UST 학생연구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파이썬 및 생물정보통계)이 열립니다. 연구원 식구들조차도 이렇게 멋진 시설이 공동활용까지 된다는 사실을 많이 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2019년 11월 KOBIC 신축 건물 준공과 동시에 정식 오픈한 KOBIC 전산교육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기획부터 설계, 구축, 운영 기준 수립까지 전 과정을 내부에서 주도하였으며, 단순히 교육용 컴퓨터가 놓인 강의실이 아니라 실제 연구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전산 실습형 교육 인프라로 만드는 데 집중하여 설계 및 구축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 많은 전산교육장이 겪어 온 구조적 한계를 면밀히 분석하였습니다. 좌석과 장비 부족으로 다수 인원이 동시에 실습하기 어려웠던 점, 수평적 좌석 배치로 인해 앞사람으로 프로젝터 화면이 가려져 불편했던 점, 저해상도 모니터를 비롯한 저성능의 수강생 컴퓨터, 부족한 네트워크 대역폭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동시에 다루기 어려웠던 점, 전용 실습 서버 부재로 수강생 컴퓨터에 임시 가상 환경 구성과 제한된 용량으로 인한 체험형 교육 진행으로 수강 성취도가 낮아졌던 점, 그리고 이를 상시 관리할 전담 인력이 부족해 관리 부실과 운영 품질이 낮다는 점 등이 대표적입니다. KOBIC 전산교육장은 이러한 문제를 근본부터 손보는 것을 목표로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간 구성, 장비 배치, 네트워크 대역폭 증설, 전용 실습 전산장비 구축, 자동화 기반 운영 체계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교육장을 구축하였습니다.

 

공간 계획은 신축 건물 설계부터 시야와 동선의 효율을 최우선에 두어 설계하였습니다. KOBIC 전산교육장은 239.56 ㎡(약 72평) 공간에 강사 1석, 수강생 53석 총 54석을 배치하되 좌석 간격을 충분히 확보해 자연스러운 이동과 협업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특히 2.5인 테이블 기준으로 각 테이블마다 수강생 2인당 1대의 공유형 중앙 모니터를 배치하고, 천장형 보조 모니터 2대를 추가하여 수강생은 빔 프로젝트 스크린 화면을 직접 보지 않더라도 어느 자리에서든 동일한 품질로 화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빔 프로젝터, 전자칠판, 중앙 공유형 모니터, 수강생 모니터 모두 2K 이상 고해상도를 지원하여 기존의 저 해상도에서 문제 되었던 강의(Bio-Express 교육 등)를 개선하여 일반 강의뿐 아니라 고해상도 화면이 필요한 강의도 원활히 수강할 수 있는 전산 실습 환경을 조성하였습니다.

 

핵심 인프라는 전산 실습용 전용 인프라 접근성, 처리 성능 및 강좌 맞춤형 이미지 배포에 맞춰 구성하였습니다. 데이터센터 1층 서버실과 교육장 사이에 40Gb/s 전용 네트워크 회선을 구축하여 모든 수강생 컴퓨터에서 동시에 요청하여 처리하더라도 대용량 데이터에 대한 지연과 병목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층 서버실에는 전용 전산 실습 서버 10대를 포함하여 K-BDS 플랫폼, Bio-Express 등을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강좌 별 요구사항에 맞게 고성능, 고대역폭 전산 실습 서버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용 전산 실습 서버는 각 강좌마다 다양한 운영체제, 프로그램, 수강생 수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전 검증된 템플릿/이미지 기반 배포 시스템을 사용하여 동일 환경을 제공하여 전용 인프라를 탄력적으로 할당하고 있습니다.

 

적은 수의 인력으로 전산교육장까지 담당하기 위하여 전산교육장 운영 자동화 시스템은 필수였습니다. 전산교육장의 모든 수강생 PC는 원격에서 일괄 전원 On/Off와 스케줄 관리가 가능하며, 하드디스크 복제 기능으로 수업 종료 후 자동으로 초기 상태로 되돌아갑니다. 윈도우 업데이트는 사전 검증·단계적 배포로 안정성 및 효율성을 확보했고, 스크립트 기반 프로그램 설치와 교육 자료·실습 데이터의 일괄 배포도 자동화했습니다. 이러한 자동화 체계 덕분에 준비와 정리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강의마다 동일한 시작선에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인력 측면에서도 전담 인력이 충분치 않은 현실을 감안해 운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서비스 수준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설계·구축하였습니다.

 

전산교육장은 KOBIC 전용이 아닌 준개방형 모델로 운영합니다. 지역 내 실습 전산교육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을 고려해, 학교·연구소 등 교육·연구 목적의 기관이나 중소벤처기업이라면 활용 신청을 하실 수 있으며, 이번 UST 교육처럼 KOBIC 구성원이 강사로 참여하는 맞춤형 생명정보 기초 교육도 가능합니다. KOBIC 홈페이지의 연구지원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시면, 내부 적정성 및 보안성 검토 후 교육 환경 구성, 지원 범위, 일정 조율에 대해 상세히 안내드리겠습니다. 공용 인프라로서의 보안과 신뢰성을 엄격히 준수하는 한편, 강좌의 목표와 데이터 특성에 맞춘 맞춤형 구성이 가능하도록 유연하게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KOBIC 전산교육장(제 52회 차세대 생명정보학 워크숍, 2025년 8월 28일)

 

  • 작성자변익수 (KOBIC 선임기술원)
  • 작성일2025-09-22
  • 조회수114
  • 댓글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