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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혁신을 가로막는 문화
  • 작성자 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4-09-20 12:22:00
  • 조회수317
  • 댓글수0

행정규제기본법에 의하면 (행정)규제(規制, regulation)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쉽게 말해서 국가 권력을 통해서 하면 안 되는 것, 또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규제는 법률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규제 법정주의를 택하고 있습니다.

 

포지티브 규제는 허용되는 것을 나열하고 그 이외의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네거티브 규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열하고 그 이외의 것을 허용하는 것이라는 친절한 국문 설명 자료가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구글에서 ‘positive (또는 negative) regulation’으로 검색을 하면 생명과학 과목에서 유전자 발현 조절 메커니즘의 하나로 배웠던 용어에 대한 설명이 훨씬 더 많이 나옵니다. ChatGPT에 의하면 생물학 및 유전학 분야에서 이 용어가 먼저 쓰였고, 정책이나 규제 용어로 쓰인 것은 더 나중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법령에 의해 무엇인가를 하도록 혹은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문화에 더욱 익숙하며, 그만큼 자주 규제 관련 용어를 설명하거나 찾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것 같습니다.

 

흔히 선진국(특히 미국)에서는 명시적으로 금지된 사항을 제외하면 모든 것을 허용하는, 즉 네거티브 규제를 원칙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선진국을 따라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주 높습니다. 특히 바이오헬스 산업의 혁신을 이루려면 그 근간은 네거티브 규제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미래 사회에서 가치를 발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법 현실은 보다 복잡합니다.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으면, 이를 스스로 판단하여 실행하기가 아주 어려운 사회라는 것이지요. 이것 때문에 규제가 미치지 못하는 회색지대가 생기게 되고, 자율과 창의 및 이로부터 촉발되는 혁신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매우 정도가 심한 고맥락 문화 사회 아니겠습니까? ‘하란다고 하냐?’-‘하지 말란다고 안 하냐?’-‘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라’라는 조언이 통용되는 고맥락 문화 사회에서는 이로 인한 소통의 비용도 여간 높은 것이 아닙니다. 관계와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하느라 말과 글이 길어지고, 결론은 항상 뒤에 나오거나 때로는 모호하게 제시됩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기도 어렵습니다.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것은 일절 시도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반대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것을 눈치껏 암묵적으로 수행하는 것의 간극은 엄청나게 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그래서 규정이 마련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까 두려워서 실행을 하지 못하고,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됩니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국민의 안전 및 건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강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안전성은 당연히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질병을 예방 또는 치료할 수 있는 유효성도 갖추어야 하며,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만이 허가를 통해 시장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 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있는 신기술에 대해서는 보다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국내에서는 제대로 점검하지 못하고 지나친 초기 과정의 결함을 문제 삼아서 나중에 의약품에 대한 허가 취소를 해 버리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공무원 조직에서 그 책무를 다 하지 못한 셈인데, 오히려 기업인들을 공무집행 방해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용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사후에 보완을 하여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명분을 내세워 그 이후에 벌어진 모든 일을 무위로 되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맥락 문화는 논의 과정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요구 사항을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고 분위기나 배경을 통해 전달하는 일이 매우 흔합니다. 나중에 문제를 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심의위원회나 평가위원회 회의록에는 아예 참석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거나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도록 친절하게도 ‘알아서’ 익명처리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으니 외압에 의해 의사 결정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도 외부에서는 알기 어렵고,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황을 잘 추스르는 사람은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규제는 우리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는 공식적이면서도 가장 바깥에 위치한 딱딱한 겉껍질이라고 한다면, 우리 고유의 의사소통 문화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벗기기도 어려운 속껍질에 해당할 것입니다. KOBIC이 추진하는 여러 사업은 오랜 기간 동안의 기획과 논의를 거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드러나지 않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뭘 어쩌겠습니까. 그 속껍질조차 우리 사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을.

 

KOBICian’s story는 KOBIC 멤버가 직접 작성하는 현장감 넘치는 글로서 KOBIC의 업무 방향이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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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공개될 월요일 무렵이면 저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행을 그렇게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은 추석 연휴 동안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일 년 만에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며칠간의 연차 휴가를 덧붙인 특별한 여행이었습니다. 최근 환율도 너무 올랐고 외국에 대하여 우호적이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 때문에 입국 심사 과정에 혹시 차질은 없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출국 직전까지 서울과 고양, 그리고 제주도를 오가면서 바쁜 업무를 소화하느라 혹시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여정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이라서 안전하게 여행을 다 마쳤다고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모든 걱정의 95%는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였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이거나, 또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일이라서 걱정을 해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란 어찌 보면 통제할 수 없는 알약 하나를 삶에 풀어 넣고 들이키면서 이를 즐기거나 심지어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 기회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날씨가 완벽하고, 공항 수속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숙소는 청결하고, 모든 것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경험만 한다면 그만큼 재미없는 여행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도 이번 뉴욕 여행에서 구글맵에 의존하여 현대미술관(MoMA)을 찾아가다가 잠시 길을 잘못 접어들었을 때, ‘파파라치 도그맨과 래빗걸’(Paparazzi Dogman & Paparazzi Rabbitgirl)이라는 공공미술 조각 작품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우연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영어 소통은 여행에서 접하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언어란 원칙적으로 통제 가능하지만 능통해지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지요. 브롱크스행 지하철이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다른 노선으로 우회한다는 안내 방송을 가까스로 알아듣고, 작년에 뉴욕을 방문하여 지하철에서 겪었던 얄팍한 경험―엄청나게 고생했다는 뜻임―을 동원하여 분기점 역에서 성공적으로 내린 뒤 그곳으로부터 목적지를 가기 위해 원래 계획에 없었던 센트럴파크를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르며 정말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의사소통 문제로 좌절감을 느끼는 현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인생이라는 잘 설계된 짐꾸러미에 내가 원하지 않으니 ‘우연’을 넣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것이고, 일부러라도 넣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글의 주제입니다. 생물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우연은 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이는 혁신의 원동력이자 피할 수 있는 생명의 속성입니다. 변이체는 지금 당면한 현실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변이를 시도할 때 변화하는 환경에 언젠가 적응하여 세상의 주류가 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종종 이방인이나 소외자가 세상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너무 단조롭고 원하는 대로 술술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우연이라는 난수 발생기를 일부러라도 한번 돌려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행은 아주 좋은 선택이 됩니다.


여행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시각을 넓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예를 들어 뉴욕시에는 화재 탈출용 철제 사다리(fire escape)를 외부에 갖춘 고풍스러운 주거용 건물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 이는 당시 법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서 건물이 지어진 지 최소한 90년이 넘었음을 증명합니다. 원주민과 주류 이민자 및 사회적 약자를 포함하여 뉴욕이라는 도시를 형성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권리와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려는 운동과 전시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본인의 경제적 형편에도 잘 맞아야 하고, 세계와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저개발국가의 싼 물가를 이용하여 호사를 누리는 여행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여 돈을 쓰기 때문에 그들이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그 나라의 경제가 돌아가게 한다는 다분히 소비자적이면서 우월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여행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나 자연환경을 해치고, 그들을 저임금 관광 산업 종사자로 얽어매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뉴욕시 지하철에 붙은 질서 유지 안내문에서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한 방문자(inattentive visitors)는 되지 말아 달라는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광객이니까 아무리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현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K-문화 신드롬 때문에 이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도 급증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배타적인 생각을 갖지 말고,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잘 대우받기를 기대하듯이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대해야 합니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라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연은 모험과 성장의 씨앗이 됩니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우연은 늘 예기치 못한 바람처럼 불어옵니다. 그 바람이 때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항구를 떠나야 비로소 바다의 넓이를 알 수 있듯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야 세상의 다양함과 인간의 너그러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이 제게 가르쳐 준 것은, 안전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우연이 열어주는 성장의 가능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여 편의 유튜브 쇼츠가 추억으로 남았고, 이를 만드느라 동영상 편집 기술도 많이 늘었답니다.

  • 작성자정해영 (KOBIC 센터장/책임연구원)
  • 작성일2025-10-13
  • 조회수55
  • 댓글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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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반복에 지쳐 무료함이 찾아올 때면, 어린 시절 품었던 공상과학적 상상을 영화로 옮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 상상을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철학을 담아낸 공상과학 영화 시놉시스를 써보았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이 글을 통해 잠시나마 일상의 틀을 벗어나 작은 즐거움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제목: 미니 어스(Mini Earth)

 

<프롤로그공태양과 미니 어스의 탄생

2058년, 인류는 마침내 꿈꾸던 핵융합 발전소를 완성한다. 핵융합의 결정체인 인공태양이 토카막 장치(자기장으로 인공태양을 가두는 장치) 안에서 첫 빛을 발하는 순간, 무한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고 세상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그 빛의 이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인공태양을 감싸기 시작한다. 흩날리던 미세 먼지들은 서서히 모여 단단한 구슬로 변하고, 그 작은 씨앗은 점차 하나의 미니 행성으로 태동하며 인공태양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행성은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생성된 행성들 중 하나에서는 물이 흐르고, 대기가 형성되며, 원시 생명체가 태어난다. 인류는 경이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이 행성을 미니 어스라 부르며 연구에 착수한다.

그 최전선에는 두 인물이 있다. 미니 어스의 진화를 적극적으로 이끌려는 천재 물리학자 한동수 박사, 그리고 인간의 개입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철학적 생물학자 이유정 박사. 두 사상은 정면으로 충돌하며, 미니 어스는 단순한 과학 실험을 넘어 새로운 생명의 운명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의 무대로 변한다.

 

<전개> 1. 미니 어스 첫 번째 대격변 발생(천재지변)

생성된 행성들 중 하나가 예기치 못한 궤도로 진입하며 미니 어스를 향해 돌진한다. 붉은 빛이 미니 어스의 하늘을 물들이고, 충돌이 일어난다면 행성은 파괴될 것이 분명했다.

한동수 박사 연구팀은 미니 어스의 생명체들에게 감정이입하며 고민한다. ‘내가 이 생명체들을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들의 신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반면 이유정 박사팀은 자연 현상에 인간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한다.

결국 한동수 박사팀은 은밀히 토카막 장치를 조작해 행성의 궤도를 바꾸려 한다. 그러나 미니 어스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인다. 중력이 요동치며 시간의 흐름이 급격히 가속화된 것이다. 충돌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미니 어스의 생태계와 문명은 돌이킬 수 없는 진화를 맞는다. 그 순간, 한동수 박사는 자신이 신이 아니라 오만한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전개> 2. 미니 어스의 문명 발전 우주로 나가는 존재들

시간의 가속 속에서, 미니 어스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성장한다. 그들은 원자력, 양자역학, 생명공학을 섭렵하며 마침내 인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준에 도달한다. 이제 그들의 눈은 우주를 향한다. 비록 그것이 토카막 장치 안의 제한된 공간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무한한 우주였다.

이를 지켜본 연구팀은 경악한다. ‘우리가 창조한 존재들이 이제 우리의 영역에 다가오고 있다!’

한동수 박사팀은 이제 그들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우리와 동등한 지적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유정 박사는 ‘그들이 우리를 신으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신이 되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고, 개입하는 순간, 그들 역시 결국 인간이 걸어온 길 '오만과 실수의 길' 을 반복하게 될 것’ 이라고 경고한다.

 

<전개> 3. 미니 어스 생명체들의 인식

마침내 미니 어스의 문명은 연구팀의 존재를 감지한다. 한동수 박사팀은 불안에 휩싸인다. ‘그들이 우리를 신으로 인식할까, 아니면 침입자로 인식할까?’

미니 어스의 생명체들은 하늘을 향해 거대한 구조물을 세우고, 인간을 ‘신’이라 숭배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그 신앙은 점점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하며, 인간을 시험하려는 듯한 의식으로 발전한다.

결단 끝에 한동수 박사가 첫 직접 접촉을 시도하려는 순간, 예상과 달리 그들로부터 먼저 신호가 도착한다. 연구팀은 신호를 해독하다가 경악한다. 그 메시지는 명확했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너희는 너희 창조주를 이해하는가?”

그들은 더 이상 피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구팀이 실험당하는 입장이었고, 인간이 신이 아니라 피실험체였던 것이다. 연구팀은 새로운 공포에 사로잡힌다.

 

<엔딩> 선택의 기로

연구팀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니 어스를 파괴할 것인가? 그들과 직접 소통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은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존재인가?

카메라는 미니 어스의 푸른 행성을 비추며 점점 멀어진다. 그 순간, 연구팀 위로 거대한 손가락 같은 것이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또 다른 미니 어스가 아닐까?”

 

 

영화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 영화 시놉시스는 단순한 상상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형 로봇과 AI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가능성을 선사하지만, 통제 불가능한 두려움,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불안을 불러옵니다. 이 시놉시스의 미니어스가 인간에게 던진 질문은 사실 미래의 우리가 AI와 로봇에게 던지게 될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창조일까요? 피조물일까요?’

잠시나마 이 글이 여러분의 일상 속에 작은 상상과 사유의 여지를 남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한국희 (KOBIC 선임연구기사)
  • 작성일2025-10-06
  • 조회수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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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학 동기 셋이 함께 첫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목적지는 베트남 다낭. 이곳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동행한 친구 중 한 명이 1년 동안 베트남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언어와 문화를 조금 익혔고, 마침 다낭 왕복 항공권이 땡처리로 저렴하게 나온 것을 발견한 것이죠. 베트남어가 약간 통한다는 든든함도 저의 선택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첫 여행의 설렘은 곧 무모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숙소조차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패기를 보였고, 그 대가는 새벽에 다낭에 도착한 후부터 고스란히 치러야 했습니다. 저렴한 숙소는 모두 닫혀 있었고, 열려 있는 곳은 그저 몇 시간 잠만 자기엔 부담스러운 리조트뿐이었죠.

 

하염없이 걷다 겨우 찾아낸 유스호스텔 같은 숙소를 찾아 들어갔지만, 방을 내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로비나 바깥 벤치에서만이라도 잠시 몸을 누일 수 없겠냐고 물었지만, 직원은 고개를 저었어요. 다른 곳으로 가보라는 말뿐이었죠. 하지만 새벽녘에 더 돌아다닐 기운조차 없었던 우리는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하면서 벤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곤 지친 몸을 누인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첫 해외여행의 시작이 노숙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벤치 위에서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때쯤, 낯선 음악 소리가 우리를 잠에서 깨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연상시키는 선율이었어요. 당시에는 ‘아, 이 나라에도 비슷한 운동이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 베트남의 새농촌마을 사업과 관련된 노래였습니다. 그 선율과 함께 점점 거리를 가득 메우는 오토바이의 경적과 차량 소음이 뒤섞여 이국적인 리듬을 만들어냈어요. 눈을 뜬 순간 마주한 풍경은 한국의 일상과는 전혀 달랐고, 그 순간 저는 ‘정말 다른 세계와 와 있구나’라는 걸 온몸으로 실감했습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바닷가에 닿았어요. 이른 아침의 다낭 해변은 생각보다 조용했습니다. 관광객도, 현지인들의 분주한 모습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시간.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잔잔한 파도 소리만이 우리 곁을 채웠습니다. 낯선 도시 새벽의 고요함이 묘하게 안정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이곳이 완전히 다른 세계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해변 위에 차려진 노점 식당에 들어가 배를 채웠어요. 특별한 것 없는 한 끼였지만, 낯선 땅에서 먹는 첫 식사라는 의미만으로도 기억에 깊이 새겨졌지요.

 

여행 내내 드러난 우리의 차이점 중 하나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저는 비위가 약해 길거리 음식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어요. 결국 깨끗해 보이는 식당이나 서양 음식점을 찾아야 마음 놓고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친구들은 거리의 국수며 꼬치를 거리낌 없이 즐겼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음식 하나로 각자가 가져가는 경험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낭에서 후에로 이동해 오래된 사원을 찾아 오토바이를 빌려 탔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좁은 도로를 달리자, 눈앞에는 낯선 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졌나요. 그 순간만큼을 해방감이 온몸을 채웠지만, 동시에 불안감도 스며들었습니다. 낯선 교통 체계 속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 자유와 위험이 공존하는 도로 위에서, 우리는 그저 순간의 짜릿함에 몸을 맡겼었죠. 그리고 돌아보면 사실 대단한 바이크도 아니고, 그저 작은 스쿠터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묘한 웃음을 자아내곤 합니다.

 

관광지를 둘러보며 목이 말라 노점상에서 물을 사 마셨는데,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디지털카메라를 그곳에 두고 온 걸 깨달았어요. 서둘러 다시 돌아갔지만, 이미 카메라도, 자리를 지키던 노점상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험 보상을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지만, 언어의 벽은 높았어요. 그때 뜻밖에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등장했습니다. 한류가 막 싹트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베트남의 한 경찰서에서 한국어를 듣게 되니 놀랍고도 반가웠어요. 비록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 만남은 여행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시장에 들렀을 때도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다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과일 노점에서 거래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가만히 듣던 친구가 과일 노점상이 가격을 한 10배쯤 비싸게 부르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어로 흥정해 적정 가격에 거래할 수 있었지만, 언어가 안 통하는 관광객에게는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는 모습이 씁쓸했어요.

 

이런 경험은 시장에서만 겪은 것이 아니었죠. 여행 기간 몇몇 식당에서도 관광객 전용 메뉴판을 내밀며 비싼 금액을 적어놓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베트남어로 메뉴를 물어볼 때는 가격이 달라지는 걸 직접 보니,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대접을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이 관광객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운 사례가 뉴스에 오르곤 하는데, 막상 제가 그 상황이 되어보니 이해보다는 서운함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아름답게만 남을 수 있었던 기억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았어요. 시작은 벤치에서의 노숙이었고, 이어지는 여정마다 크고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사건들이야말로 여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어요. 계획대로만 흘렀다면 얻지 못했을 배움이었죠. 불편함과 당혹스러움 속에서도 저는 세상은 넓고, 제 기준은 좁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낯선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 뜻하지 않은 불편함이 오히려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베트남에서 보낸 시간은 긴 여운으로 남았어요. 여행은 과정에서도 빛난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긴장과 설렘,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일상으로 복귀한 후에도 그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을 흔들었어요. 벤치에서 떨며 보낸 첫날 밤, 오토바이로 달리며 느꼈던 해방감, 경찰서에서 뜻밖의 인연, 시장과 식당에서 겪었던 씁쓸한 경험까지, 모든 조각이 모여 제 안에서 여행의 새로운 정의가 되었습니다.

 

여행은 단순히 쉬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낯선 세계와 마주하면 나를 시험하고 확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서, 저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인생이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편함마저 웃으면 추억할 수 있게 만든 것, 그것이야말로 첫 해외여행이 제게 준 진짜 선물이었답니다.

  • 작성자송왕호 (KOBIC Developer)
  • 작성일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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